벌거숭이로 입적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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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ELLO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6-06-02 15:19본문
벌거숭이로 무빈소장례 입적하려 한다— 강우식의 『결초보은』을 읽으며시인은 유언을 썼다. 그리고 어제, 그 유언이 현실이 되었다.강우식의 「수장水葬 유언」은 『결초보은』에 실린 시다. 자서전 격의 마지막 시집이라고 했다. 시인은 이 시집을 내는 것을 보고 세상을 떴다. 아내를 먼저 고향 앞바다 주문진에 수장했고, 자신도 그리 해달라고 유언했다 한다.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진 장례를, 우리는 어제서야 알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쓰인 시 한 편이, 그제야 다르게 읽혔다.이 시는 죽음에 관한 시이지만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인은 장부를 꺼낸다. ‘치부책 꺼내 들고 무빈소장례 어이 다 가리라.’ 살아 있는 동안 지고 받았던 모든 은혜, 다 갚으려 했으나 미진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이 시에서 가장 무거운 한 줄이다. 체념이 아니다. 살아온 무게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말이다.결초보은結草報恩 — 시집의 제목이 된 그 약속을, 시인은 이 시에서 거두어들인다. 갚다 못 갚은 결초보은도 저승까지 이어가지 않겠다고 한다. 이승에서 일은 이승에서 막음하고 벌거숭이로 입적하려 한다. 이것은 포기가 아니라 탕감 선언이다. 그 안에 묘한 해방감이 있다.‘저승에는 아내가 있다.’ 무빈소장례 이 마지막 한 줄이 시 전체의 무게 중심을 바꾼다. 수장의 윤리를 설명하고, 치부책을 꺼내 들고, 결초보은을 이승에서 끝내겠다고 선언하는 그 모든 말들은, 사실 이 한 줄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었다. 저승은 무無가 아니라 아내가 있는 곳이다.‘혹여 내 죽거든 나를 따라 절대 바다에 묻히고자 하는 여자는 없었으면 한다.’ 떠나는 자가 남는 자를 걱정한다. 이 역전된 시선이 이 시를 단순한 유언시와 다른 자리에 놓는다.저승에는 아내가 있다는 말의 무게를 이해하려면, 그 사랑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마음 무빈소장례 부자」에서 시인은 고백한다.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아내를 만났다.한국분단 전쟁으로 교실 지붕이 날아간교탁에서 그녀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나는 그때부터 사랑을 알았다.전쟁 중, 지붕이 날아간 교실이었다. 그 폐허 속에서 한 소녀가 노래를 불렀고, 한 소년이 그 노래를 듣고 사랑을 알았다. 한날한시에 같이 죽고 같이 살자던 그녀가 먼저 달나라로 떠났다. 그러나 그는 꿈꾼다. 저승에서도 마음의 부자가 되어 아내와 원도 한도 없이 살겠다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된 사랑이, 결국 주문진 앞바다로 이어졌다.아내를 잃은 이후의 시간은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에 있다. ‘아내가 무빈소장례 있을 때는 꽃향기의 그녀 살냄새에 빠져 매일 무아지경의 잠에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몸은 늙고 여위어 고립무원이다.’시인은 그 고독 속에서 난蘭을 친다. 난엽은 꺾기어도 그 향기는 천리를 간다고 했다. 읽다가 나는 다른 장면을 떠올렸다. 아내에게 팔베개를 해주던 밤, 꺾인 팔꿈치에서 피어오르던 살냄새. 꺾임은 상실이 아니라 오래된 사랑의 형태다. 추사가 ‘불이선난不二禪蘭’이라 이름 붙인 것처럼, 아내와 일심동체로 살았던 삶 그 자체가 이미 난이었다.「시인 일생」 마지막 연.여태까지 살아 있음이다.이 기쁨을 결초보은하는 길은나름대로 사는 날까지 시를 짓는바로 그 무빈소장례 길이 나로서는 결초보은이다.시를 짓는 것 자체가 결초보은이라는 말이다. 사랑으로 시작한 삶이, 시로 갚음이 된다.이 말은 그에게 평생의 실천이었다. 강우식은 미당 서정주의 제자였다. 한국 시단의 종주라 할 미당을 찾아 4년여를 견뎌 시인이 되었고, 미당 사후 스승을 부관참시하는 글이 나왔을 때 결초보은하는 심정으로 장문의 반론을 썼다. 결초보은이란 살아 계실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못 보아도 갚는 것임을, 그때 깨달았다고 했다. 시집의 제목은 그렇게 몸에서 나온 말이었다.시집 말미에서 시인은 고백한다. 시는 평생 그에게 시지프스의 바위였다고. 마지막 무빈소장례 시집을 내는 것을 보고 떠났다. 그 괴로움이 있어 행복한 삶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글을 맺었다.지금 이 순간에도 주문진 앞바다에는 파도가 온다. 쉼 없이, 때로는 크게 때로는 작게. 그 소리가 강우식 시인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외침이었다가 속삭임이 되고, 속삭임이었다가 다시 외침이 된다. 사랑이 삶이 되고, 삶이 시가 되고, 시가 다시 사랑으로 돌아갔다. 전쟁 중 교탁에서 들은 노래 한 가락이 한 시인의 일생을 관통했다. 벌거숭이로 간다고 했지만, 그는 빈손이 아니다. 평생 굴린 바위가 있다. 그 바위가 시다.저승에는 무빈소장례 아내가 있다고 했다. 이승에는 그의 시가 남는다.오늘 저녁, 주문진 앞바다를 한 번 마음속으로라도 바라봐 주시면 좋겠습니다.————-사랑하는 사람아 눈이 푹푹한 저녁 닥이면마른 솔가지 한 단쯤 져다 놓고 날이 새도록그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싶었다.저 쓸쓸한 눈발이 그칠 때까지….— 강우식 「설연雪戀」한규동—P.S.단톡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강우식 시인이 19일 병원으로 가는 도중 돌아가셨다고.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고.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던 아들은 무빈소로 장례를 치렀고, 주문진 앞바다에는 딸과 사위와 삼촌이 배를 타고 나가 뿌렸다고. 황망했다. 밤새 이 시집을 다시 읽었다. 시인은 무빈소장례 이미 써두었다. 모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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